[스크랩] 안연 12
季康子問政於孔子曰(계강자문정어공자왈) 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여살무도이취유도하여) 孔子對曰(공자대왈)子爲政焉用殺(자위정언용살)
子欲善而民善矣(자욕선이민선의)
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군자지덕풍소인지덕초) 草上之風必偃(초상지풍필언)
季康子(계강자) 정치를 공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無道(무도)한 자를 죽여버리고 有道(유도)한자를 進就(진취)시키면은 어떠합니까 함에
공자 대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정치를 하는데 어찌 죽임을 사용하려 한단 말인가? 그대가 善(선)하고자 하면 백성들이 다 착하게 될
것이라 군자의 덕은 바람 이요 소인의 덕은 풀인지라 풀위에 바람이 분다면 풀은 자연 바람이 부는 대로 누울 것이다 하시다
焉(언)의 音域(음역)은 於虔(어건)反(반)이다
政事(정사)라 하는 것은 백성이 보아서 본 받는 것인데 어찌 죽임으로 한다 할 것인가 자신이 善(선)하고자 한다면
백성이 다 善(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上(상)의 글자 쓴 것엔 어느 한곳을 본다면 尙(상)으로 지어 더한 것을
보앗다 그렇게 된다면 해석이 풀은 崇尙(숭상)하는 것이 바람이라 소이 바람을 숭상하여 눕는다는 그런 의미가 된다 할
것이다
偃(언)은 (부)=엎드리다, 뒤집다,죽다,라는 의미이다
尹氏(윤씨)는 말하대 말하는 것이 죽임을 논한다면 어찌 사람의 윗 된 자라 할 것인가 ? 어찌 사람을 위하는 윗 된 말씀이라 할 것인가? 몸으로써 가르치는 것은 보고선 쫓게 하려는 것이고, 입으로만 말로써 가르치려는 것은 是非(시비)를 논하려는 송사일진데 하물며 죽임을 사용한다 할 것인가?
* 벽허= 소이 몸으로 귀감을 보이는 것이 첫째라는 것이라 이미 말씀으로 무엇을 가르치려 든다는 것은 몸으로 직접 실천해 보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인데 하물며 죽이는 논리를 전개해서는 백성들을 가르치려 들것인가를 공자님 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子張問士(자장문사) 何如斯可謂之達矣(하여사가위지달의)
자장이 선비의 가짐에 대해서 묻길 어찌라야만 그렇게 선비라 하는데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통달한다하는 것은 덕성 스럼이
남에게 진실 됨을 보여서는 얻지 아니함이 없음을 가리킴이다
子曰何哉(자왈하재) 爾所謂達者(이소위달자)
孔夫子(공부자)께서 말씀 하시대 뭣 말인져 너의 이른바 통달함이라 하는 말은....
子張(자장)이 겉의 드러나는 것만 힘쓰는지라
공부자 께서 대저 이미 무얼 물어 일으킬려 하는 意中(의중)을 아시는지라 그러므로 반문하여 힐책하시는 것이라 장차 그 병탈 된 것에
治癒(치유)하는 藥(약)의 말씀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子張(자장)이 대하여 말하기를 나라안에서 반듯이 명성이 자자하고 家門(가문)안에서 길필코 소문이 자자하다면 그렇다할
수 있겠 습니까?
* 名譽(명예)가나는 것은 聞(문)이라 말하는 것이다
子曰是聞也(자왈시문야) 非達也(비달야)
孔夫子(공부자)께서 말씀하시길 이러한 것은 소문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그 통달한 것은 아니 나니라
* 소문과 더불어 통달은 서로간 類似(유사)하여도 같지 않음이니 성실하과 거짓을 갖고선 나누어 지는 것이라 배우는 자 바르게 살피지 아니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孔夫子(공부자)께서 밝게 下(하)文章(문장)에서 또 자세한 말씀으로 分辨(분변) 하시는 것이다
夫達也者質直而好義(부달야자질직이호의) 察言而觀色(찰언이관색) 慮以下人(려이하인) 在邦必達在家必達(재방필달재가필달)
대저 통달이라 하는 것은 바탕이 곧아서는 의로움을 좋아하고 말씀으로 살피고 色(색)으로 관찰하여선 생각으로써 남에게 내리는 것이니
* 벽허= 말씀을 관찰하고 색을 관망하여선 생각을 남에게 내린다는 것은 그 눈높이 조절을 잘 한다는 것이리라
타인의 배려를 잘한다는
것인데 남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을 잘 읽는다는 것이리라 이런 것을 나라에 있어선 기필코 통달했다 할수 있으며 家門(가문)에 있어서도 기필코
통달했다 할 것 이니라 하시다
* 夫(부)의 音域(음역)은 扶(부)고
下(하)音(음) 역시 好(호)音(음)고 같이 下(하)音(음) 다같이 높은 소리이다 所以(소이)去聲(거성)이다
안으로 충신함을
主幹(주간)하고 행하는 것이 적당한데 합하여선 접촉하는 사물을 자세 살피어선 자신을 낮춤으로서 기르려는 자는 다 자기 자신 안으로
修養(수양)을 닦아선 타인에게 찾지 않음을 알음일진데 일이 그렇다면 덕은 자신한테서 닦아선 다른 자들이 믿게하여 간다면 행위하는 것이
자신으로부터 막힐 것 장애를 일으킬 것이 없는 것이다
夫聞也者(부문야자)色取仁而行違居之不疑(색취인이행위거지불의) 在邦必聞在家必聞(재방필문재가필문)
대저 名聲(명성)이라하는 것은그 색깔이만 좋게 취하려 드는 것인지라 違背(위배)되는 行爲(행위)를 하여선 머물러도 그 의심을
내려 들지 않으니 나라에 있어선 명성이 자자하고 집안에 있어서도 명성이 자자하게 되는 것이 나니라
* 行(행)은
높은 소리다
그 안색만 좋은 것으로써 남에게 취하려들고 행실이 위배되고, 또 자신이 옳다하여선 忌憚(기탄)할바 소이 꺼릴게 없다고 나대어선 진실함을 힘쓰지 않고 오로지 명예 찾는 것만 힘쓰는 것이니 그러므로 헛된 소문만 비록 자자 융성하여도 진실한 덕은 병탈이 잡히게 되는 것이다
程子(정자)는 말하기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진실한 덕을 힘쓸 것이라 저속한 名譽(명예) 求(구)하는 것을 뜻을 두지 않을 것이니 名譽(명예)에 근접하면 대저 근본을 이미 잃게 되는 것이니 거듭 배우는 자 무슨 일이던지 명예를 위하여 배운다면 이 거짓된 것이라 할 것이라 이제의 배우는자 대저 명예를 위하려드는데 명예을 위함과 더불어 이익을 위함과는비록 淸濁(청탁)이 같지 않으나 그러나 그 이롭고자하는 마음은 한가지일 것이다
尹氏(윤씨)는 말하기를 子張(자장)의 배움은 진실함을 힘쓰지 않데에 병탈이 존재하는 것인지라 그러므로 孔夫子(공부자)께서 독실한 일을 하는 것으로서 告(고)하게 되는 것이라 안으로 충실하다면 겉으로 피어나는 것이니 당시의 門人(문인)들도 聖人(성인)의 가르침을 친히 접하여선 사랑하면서도 差等(차등)으로 잃어버림이 이 같음인데 하물며 後世(후세)사람들이야 말할 나위 있을 건가 하다